100년이 넘는 시간, 용소막을 지켜온 성당
용소막 성당의 역사는 이성당이 만들어진건 1904년으로 성당건립 방식이었던 로마네스크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처음에 성당건물은 초가집이 었는데 시잘레 신부(Pierre Chzalle)에 의해 벽돌건물로 지어지게 되었다.
병인박해를 피해 강원도 남부 산간지대로 이주하여 천주교도들이 이지역에 전파 하였으며, 원주본당의 공소로 지정되어 초가 10칸의 경당을 지으면서 시작되었으며, 1904년 포아요(Gaston Poyud)신부가 초대본당 신부로 부임하여 교세 2,000명의 큰 본당으로 발전 하게되고, 1910년 후임인 기요(Joseph uillot)신부가 부임하면서 새 성당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성당을 세우던 도중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귀국한 신부는 1916년 유럽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3대 시잘레(Pierre Chzalle)신부는 중단된 공사를 1914년에 재개하여 묘재 공소의 이석연 회장의 알선으로 중국인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지역의 진흙을 사용하여 구운 붉은 벽돌과 타지에서 운반된 목재를 활용하여 건축은 이어졌으나 중국인 기술자의 실수로 인해 기둥이 2자정도 낮아져 상대적으로 가파른 지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공사 도중 장티푸스를 비롯한 질병이 나돌았지만 1915년 가을 100평 규모의 성당이 완공 되었다.
비록 건축기술과 재료의 부족, 건축인력의 미숙, 경제력의 한계 등으로 본국인 프랑스의 전형적인 성당의 외관 중 중앙의 종탑과 아치등
수직성을 강조하는 요소가 주로 채택되고 나머지는 생략되는 표현으로 만들어 졌으나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여 이루어낸 값진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시대의 성당건축양식의 일반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지붕 꼭대기의 뾰족한 탑이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인 아름다운 성당이다.
출처:https://www.wonju.go.kr/tour/contents.do?key=4086